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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멜로] 바다가 들린다 1

국뷔판 청춘멜로

바다가 들린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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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시작하기에 앞서 드리는 말씀*
-모럴리스, 피폐함, 잔인함, 욕설 등의 요소가 있습니다.
-문제가 되는 표현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캐릭터의 극악함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이지 제가 이러한 표현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해당 소설은 실재하는 지역, 실존 인물과는 조금이 관련도 없는 100%의 픽션임을 밝힙니다.






그 아이들이 자란 동네는 부둣가의 비린내와, 배의 고동 소리, 어부들과 상인들의 대화 소리가 공존하는 바닷가 마을이었다. 가끔씩 목숨을 걸고 밀항을 한 중국인들이 넘어오기도 했고 현지에 처를 두고 있는 야쿠자들도 스쳐 지나가는 곳이기도 했다.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들과, 그곳에 콕 박힌 듯 어디로 가지 못하는 토박이들이 함께하는 곳이었다.

정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토박이에 분류되는 쪽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지역 출신 토박이었고 풍문에 의하면 이 동네에 본진을 두고 있는 조직폭력배의 두목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정국이 사실 확인을 해보기도 전에 그는 세상을 떠났고 정국과 그의 어머니는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됐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에 불과했던 당시의 정국은 그때의 풍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술에 잔뜩 취해 문상객들도 챙기지 못하는 어머니와, 앳된 얼굴의 정국을 끌어 안고 우는 여자들, 그리고 몇 번 만난 적 없던 아버지의 죽음이 와닿지 않아 멍하니 있던 자신의 손을 꼭 잡고 대신 울어주던 동갑내기 친구 태형의 얼굴까지. 그 어느 하나 흐려져 가는 기억이 없었다.






"이 쓰애끼. 또 쌈빡질했냐? 엉덩이 똑바로 안 들어?"


수업이 끝나는 종과 함께 교무실로 돌아온 박선생은 교무실 한 켠에 엎드려 뻗쳐 자세로 체벌을 받고 있는 자기반 학생 정국의 엉덩이를 당구 큐대로 툭툭 건드렸다. 정국은 민망한 표정으로 제 담임의 얼굴을 올려다 보다가 곧 자세를 바로 고쳤다. 박선생은 그 모습을 보고는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가 반 아이들의 과제를 걷어 저를 좇아온 태형이 건내는 노트들을 건내 받았다.


"그래, 고생했고. 어머니 잘 계시지?"
"네. 잘 계세요."
"그래, 상 치르느라 애썼다. 혼자서 마이 힘드실끼다. 당분간은 네가 좀 도아드려라."
"네 그럴게요."
"아, 유인물 줄 거 있는데 기다리라. 갖고 가래이."


박선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답변을 표한 태형은 슬쩍 곁눈질로 벌을 받고 있는 정국을 보았다. 눈가에 푸르딩딩한 멍이 든 것을 보아하니 근처의 학교 애들이랑 또 시비가 붙은 모양이었다. 그것을 보니 태형은 괜히 제가 아픈 것 같은 기분이어서 자기만 알 수 있도록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 김태형. 태형아!"


그때 태형이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정국이 속삭이듯 태형을 불렀다. 그러자 태형은 대놓고 고개를 돌려 정국을 보았고, 정국은 예의 그 뻔뻔한 얼굴로 제 얼굴을 들고는 태형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입가는 찢어져있고, 눈에는 시퍼런 멍을 달면서도 뭘 잘했다고 저를 향해 윙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태형은 어이가 없다는 의미의 헛웃음을 터뜨렸고 태형이 반응을 보이자 정국은 이번엔 다른 쪽 눈을 깜빡거리며 시그널을 보냈다.


"이 쌧끼가, 정신을 못차렸구만."


그때 유인물을 갖고 오던 박선생이 정국의 모습을 보고는 기가 차 하며 들고 있던 출석부로 정국의 머리를 쳤다. 정국은 그러자 자세를 풀고 맞은 머리를 손으로 문대며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 쌤요! 이거 완전 학교 폭력입니다!"
"학교 폭력은 니미. 니 때문에 내 가슴 찢어지는 건 생각 안하나!"


박선생은 정국의 능청에 들고 있던 출석부로 정국의 어깨와 팔뚝을 골고루 때렸고 정국은 몸을 베베 꼬며 아프다며 난리를 피우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형은 그런 정국의 모습이 귀여워 피식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야아, 태형아."
"..."
"김태형아~"
"..."
"마누라야~"
"야!"


우여곡절 끝에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평소처럼 태형과 함께 나란히 하교하던 정국은 자신이 또 태형이 하지 말라는 짓을 했다는 사실에 괜히 찔려 태형을 불러보았지만 태형은 단단히 삐진 것인지 또 대답이 없었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야 김태형 전정국 부부 동반 하교하는 거냐라며 놀리면서 지나가도 별다른 동요가 없자 결국 태형이 제일 싫어하는 호칭까지 꺼내고 만 정국은 태형이 마침내 반응을 보이자 가슴팍을 얻어 맞으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너 진짜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그러면 마누라를 마누라로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
"내가 왜 네 마누라야."
"뻑하면 바가지 긁는데 그게 마누라지 그럼."
"너 진짜. 진짜 싫어 전정국."


정국의 멈출 줄 모르는 짓궂은 장난에 태형은 그를 한 번 흘겨보고는 앙칼진 표정으로 가방을 고쳐 매고는 저만치 앞서 걷기 시작했다. 정국은 머리 뒤로 깍지를 낀 채로 여유롭게 걸으며 자기와 조금씩 멀어지는 동그랗고 앙칼진 뒷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다가 태형이 너무 멀어지려고 할 때쯤, 자세를 바꿔 후다닥 뛰어 다시 그의 옆자리를 꿰차고 걸었다.


"태형아, 삐졌어?"
"아니."
"그럼 화났어?"
"어!"


단호한 대답과 함께 태형은 자리에서 멈추고 정국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양 손으로 그의 양 볼을 길게 잡아 늘이며 말했다.


"진짜 미워. 전정국 너무 싫어!"
"아아아아, 태형아. 오빠 아파. 여기 약도 못발랐단 말이야."


그러자 정국은 과하게 반응하며 아물지 않은 입가의 상처를 가리켰다. 그 모습에 태형은 속상한 표정으로 동작을 멈추곤 능숙한 손짓으로 가방 앞주머니에 있는 연고를 꺼내 정국의 입가에 조금 짜내곤 제 약지로 살살 펴바르기 시작했다.
정국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제 상처 부위를 들여다 보고 있는 태형에 괜히 가슴이 간질거렸다. 그러나 그렇다는 것을 들키기 싫었기에 괜히 또 장난스러운 얼굴로 태형에게 말했다.


"우리 태형이, 오빠 때문에 약도 들고 다니고. 완전 현모양처네."
"...이제 그만 들고 다니게 해주면 안될까?"


눈가에도 약을 발라준 태형은 한숨을 쉬며 정국에게 말했다. 태형은 정말로 정국이 걱정 되었다. 깡패였던 아버지와 술보다 웃음을 더 많이 파는 술집 작부인 어머니 덕에 어릴 때도 그다지 예쁨을 받지 못했던 정국의 그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행여라도 정국이 아버지를 따라 나쁜 길로 빠질까 노심초사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게 맞는지 커갈수록 정국은 점점 제 아버지를 닮아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처음에는 정국의 어머니가, 그 다음엔 태형이, 마지막에는 주변 질 나쁜 또래들까지 눈치를 챘다. 네가 주먹 좀 쓴다며? 라고 시비를 거는 놈들만 한 달에 몇 팀은 될 정도였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간혹 애들이 떠드는 이야기로 검은 양복을 입은 건달들이 학교 앞에서 정국을 스카웃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태형은 정국이 그렇게 되는 꼴은 절대로 보기 싫었다. 평범하게 공부해서 같은 대학에 가 평화롭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정국은 대학에는 영 뜻이 없어 보였다. 가끔씩 자기가 그런 소박한 꿈을 비출 때면 정국은 자신은 너무 잘생겼기 때문에 여학우들이 차마 공부를 못하게 될거라며 안간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태형은 슬펐다. 매일 같이 술에 찌들어 사는 어머니, 그리고 죽은 제 남편을 똑같이 닮은 아들을 향해 퍼붓는 욕설, 가난한 배경에 대학은 언감생심이라며 스스로 포기한 제 친구의 속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우리 엄마 가게 오지마."
"왜에!"
"가서 숙제해. 이번에도 안내면 수행 점수 빵점 준다고 하셨단 말이야."
"숙제가 있었냐?"


정국의 질문에 태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태형의 표정을 읽은 정국은 민망한 듯 개구진 표정으로 웃어 보였고 미워할 수 없는 해사한 얼굴에 태형도 결국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어, 있었어. 미래의 배우자에게 쓰는 편지."


태형이 웃으며 대답하자 안심한 정국은 숙제 한 번 드럽게 간질간질하다. 장가 못가는 놈들은 어쩌라고 그런걸 내주냐? 라고 말하며 태형의 어깨 위에 제 팔을 걸치곤 말을 이었다.


"그럼 너네 어머니 식당 일 도와드리고 같이 하면 되겠다. 그치? 어차피 너도 할 거 잖아. 숙제."


태형은 정국의 이런 말에 속아 넘어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에 거절하려 했지만 제게 어깨 동무를 한 채 걸어가는 정국의 옆얼굴이 좋아보여서, 이번에도 늘 그랬듯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다.






"정국아, 전정국?"


어머니의 식당 일을 함께 돕고 난 뒤 방 아랫목에 배를 깔고 머리를 맞댄채 숙제를 하던 태형은 정국의 고개가 아까부터 일정한 속도로 올라갔다 떨어졌다 하는 것을 보고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어 그의 상태를 살폈다.

가방을 내려 놓자마자 태형의 어머니가 말리는 데도 무거운 식자재를 대신 운반하고,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술주정 하는 아저씨들도 넉살놓게 무르더니 그새 피곤해서 골아떨어진 것 같았다. 태형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양쪽으로 저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불편한 자세로 졸고 있는 그를 바로 뉘여준 다음 이불을 가슴께로 끌어 올려 주었다.


"...?"


정국의 가슴이 일정한 속도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잠시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태형은 문득 그가 무언가를 끄적거리다 만 노트를 보았고 그어진 줄도 무시한 채 담백하게 써놓은 글귀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ㅡ마누라, 사랑해.







*







"숙제 잘 봤고, 안 해 온 놈들이랑 전정국같이 안하느니만 못한 걸 제출한 놈들은 내일까지 다시 써와라. 안 그러면 국물도 없데이."
"아 쌤! 제가 그거 얼마나 정성 들여 한 건데 그러세요?"
"야임마, 배우자한테 편지를 쓰라고 했더니 마누라 사랑해.라고만 떡하니 쓰는 놈이 어딨냐?"
"그 이상 진실된 표현이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정국과 교사의 신경전에 반 아이들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박선생은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 저었고 내 흰머리의 팔십프로는 전정국이 다 니탓이다.라고 하며 교과서를 폈다. 그 행동에 학생들도 따라서 제 교과서를 폈고 정국은 옆에서 쿡쿡 거리며 작게 웃는 태형을 보고는 그의 노트 귀퉁이에 무언가를 적었다.

ㅡ마누라, 웃으면 더 예쁘네.

그러자 태형의 귀가 순식간에 시뻘게졌고 그 변화를 읽은 정국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었다.




"저... 박선생? 잠깐 좀 볼 수 있을까?"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려는 찰나, 앞 문이 열리며 교감이 나타나 박선생을 불렀다. 그는 교감이 말한 대로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잠시 복도로 나가 대화를 나눴고 이내 다시 교실로 돌아온 그는 한껏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정국아, 니 가방 싸서 따라온나. 3반 이번 교시 자습이다. 반장 애들 조용히 시키고 있으래이."


그러자 정국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제 담임과 태형을 번갈아 보더가 곧 그가 시키는 대로 교과서와 노트를 대충 가방에 쑤셔 넣더니 저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태형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어깨를 툭툭 치고는 교실 밖을 나갔다.





*




정국은 십 여년 전의 그때와 똑같은 얼굴로 상주석에 서서 문상객을 맞았다. 교감이 와서 전한 소식이란 정국 어머니에 대한 비보였다. 토박이들도 많지만 외지인들도 많았고 일본 야쿠자들이나 건달들이 자주 오가는 항구 도시 였기에 흉흉한 사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근래에 보기 드문 살인 사건이었다.
형사들은 아직 미성년자에 불과한 정국의 앞에서 말을 쉬쉬했지만 들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것으로 보아 면식범이 저지른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들 했다.

어머니의 비보를 접한 정국은 생각 외로, 아니 어쩌면 예상 대로 덤덤했다. 단 한 번도 아들에게 사랑이나 관심 한 번을 주지 않았던 여인이었다. 그런 어미가 애정이 없는 아들의 준비물, 학교 행사, 도시락 같은 것을 챙길 수 있을리 만무했기에 언제나 정국을 돌보는 것은 태형과 그의 가족이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가끔 쌈박질을 하긴 해도 정국이 그러한 환경에서도 크게 삐뚤어지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친구 가족이 베푼 온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상객을 맞던 정국은 제 어머니와 함께 팔을 걷어부치고 육개장이며 반찬이며, 추가로 주문하는 술을 나르는 태형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별다른 형제나 친척도 없이 홀로 상을 치르는 자신을 마지 제 일처럼 돕고 있는 그 모습이 어릴 때 고사리 손으로 제 손을 잡으며 위로해주던 그때와 다름이 없어서 정국은 미세한 웃음을 지었다.

그때, 거뭇거뭇한 정장을 입은 남자들 몇이 정국을 향해 다가왔다. 이름도 적히지 않은 부조금 봉투를 대충 부의함에 쑤셔 넣은 그들은 맞절도 생략한 채 정국을 마주보고 섰다. 정국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그 중 한 남자가 정국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맞네, 진국 행님 아들. 반갑데이. 내 진국 행님 생전에 곁에 모시던 동생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정국을 향해 악수를 청했고 정국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제게 뻗어진 손을 내려다 보았다. 문상객이 나가고 난 뒤 식탁을 정리하던 태형 역시 하던 일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후로 얼마 뒤, 정국은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어머니의 상을 치른 뒤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태형은 전화도 받지 않고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매일 같이 출근 도장을 찍던 제 집에도 정국의 발걸음이 없자 그의 집에 가보았지만 이미 그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와 두 사람이 살던 단칸방은 텅 비워진 채였다.


"니 정국이 소식 들은 거 없나?"


담임 교사에 질문에 태형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학교에서도 정국의 행방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전학을 간다면 간다고, 자퇴를 하면 한다고 말이라도 했을 텐데 정국은 정말로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사라졌다.

누군가는 정국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정국 역시 살해한 뒤 바다에 버렸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의 아버지를 따라 조직 폭력배에 몸 담게 되었다고도 했고 누군가는 감옥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태형은 제대로 사실을 확인하기 전까진 믿을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단 한 순간도 아무 이유나 별다른 말 없이 제 곁을 떠난 적이 없는 친구였다.

태형은 아무도 모르게 나오려는 눈물을 속으로 삭혔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하곤 생각했다. 어딘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당장은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숨은 것 뿐이라고. 태형은 담임 교사의 말에 제 옆자리 책상 서랍에 남아있는 정국의 짐을 정리했다. 특별히 챙길 게 많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태형은 최대한 느린 손짓으로 그가 남긴 교과서와 노트를 하나씩 꺼내 제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


그때, 태형의 손에 유난히 더 낯익은 노트 한 권이 잡혔다. 제 집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과제를 하던 날 쓰던 노트였다. 태형은 떨리는 손으로 제 손에 잡히는 노트를 한 장씩 넘겼다. 그리고 그 손짓은 그 날 정국이 무심하게 적어놓은 페이지에서 멈췄다.

ㅡ태형아, 사랑해. 

글귀를 본 태형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마누라로 썼던 자리에 지우개로 벅벅 지우고 끼워넣은 것은 태형의 이름이었다. 다시 써내란 교사의 말에 궁시렁 거리면서 겨우 수정했던 것이 고작 제 이름을 넣은 것이란 걸 깨닫자 태형은 더이상 눈물을 삭힐 수 없게 되었다.


주인 없는 공책에 얼굴을 묻고, 태형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안녕하세요. 구 리틀픽션 릭션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연성할 줄 모르고 아무렇게나 지었던 이름인데 막상 부르기 너무 길고
헷갈려하는 분들이 있어서 두 자로 줄여 왔습니다. 'ㅅ' 히히 이제 헷갈리실 일 없길..ㅎㅎ

처음 도전하는 청게물이네요.
미리 예고해 드리는데 늘 봐오셨던 제 장편 대로 어둡고, 우울하고, 무겁고, 또 찌통입니다.
본의 아니게 제가 또 독자님들을 괴롭히게 되었네요..ㅠㅠㅋㅋ
모럴리스, 피폐물, 찌통물이 지뢰이신 분들은 미리미리 피해가세요.

특정 지역의 사투리가 나오는데 이 지역을 부정적으로 그리고자 한 것은 아니고 그냥 항구 도시라는 현장감을 주기 위한 장치이니 오해 없으셨음 좋겠습니다.

혹시 본편에 나오는 사투리가 틀렸다거나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피드백 주세요.

그럼 오늘도 찾아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릭션 올림

지나가는 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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